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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비교)

r12 vs 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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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7424일 밤 22시, 루이나-북산 연합 지휘부는 본격적인 진압 작전 개시 명령을 승인하였고, 25일 03시를 기준으로 수도 재탈환 작전을 시행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시점에서 반란군은 이미 일부 거점에서 병력 부족과 이탈 현상을 겪고 있었으며, 내부 지휘 체계는 표면적으로는 유지되었으나, 사기 저하와 정보 격리 실패로 인해 통합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었다.
175175==== 3일차 ====
1761966년 1월 25일 오전 03시, 북산 임시 군령지휘본부는 루이나 고문단과 협의하여 ‘수도 질서 회복 작전’을 전면 승인하였고, 루이나-북산 연합 진압군은 작전명 《청색해질녘(Bleu Crépuscule)》 하에 전면 진공을 개시하였다. 루이나 측은 진압군에 기갑 수색 정찰부대 및 기동대대 예하의 M113 장갑차 약 24대를 투입하였으며, 북산군은 제2보병여단, 제6방호기갑중대, 후방 행정단 예비대 병력을 포함해 총 병력 약 2만여 명을 동원하였다. 이는 반란군의 가용 병력(약 600~800명)을 수적으로 압도하는 전력이었으며, 기갑차량을 포함한 정규 장비를 완비한 진압군은 수도 외곽의 세 진입 축에서 동시에 전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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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오전 06시 20분, 루이나 기갑 수색차량 선도대가 수도 남부 교외지역을 관통하여 제5중앙도로에 진입하였다. 해당 부대는 무장을 한 상태로 도시 중심부 방향으로 직진했으며, 반란군 측은 이를 ‘기동 훈련’으로 착각하거나, 일시적 진입 후 철수할 것으로 오판하여 초기 대응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M113 편제 차량 중 일부는 직접 병력을 하차시켜 방어선을 차단하고, 곧이어 반란군이 점거 중이던 항공정비창 외벽 초소를 향해 .50구경 기관총 사격을 개시하였다. 이는 사건 중 최초의 본격적인 기갑 화력 사용 사례였으며, 반란군 측은 이 충격으로 일부 초소를 방기하고 후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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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루이나 기갑차량은 이후 북산 수도 통신단 인근의 방어 라인을 우회하여 동쪽 방면으로 우회 진입하였고, 이에 따라 반란군의 내부 통신망은 양방향으로 차단되기 시작하였다. 도심 구역에서는 소규모 화력 교전이 산발적으로 발생하였으나, 진압군은 화력의 우위와 장비 동원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거점을 확보해나갔다. 특히 07시 45분경, 수도군사통제소 외곽에서 M113 차량 한 대가 반란군이 설치한 임시 검문 초소를 그대로 돌파하고 정면으로 병력을 하차시키는 장면은 이후 보도사진으로 널리 확산되며, 반란 진압의 상징적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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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반란군은 기갑 전력에 대한 실질적 대응 수단이 없었고, 대전차화기나 중화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일부 장교는 병력 후퇴를 명령하거나 무장을 해제한 채 항복 의사를 표시하였으며, 도심 북측에서는 지휘계통이 완전히 붕괴되어 병사 개개인이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요시카와 신지(吉川信司) 대위는 자발적으로 통제선에 나가 잔여 병력에게 항복을 설득하였으며, 별다른 저항 없이 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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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동시에 미야기 겐타로(宮城健太郎) 중위는 수도 통신단 본관 내에서 최후의 지휘 회의를 진행하였으나, 지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것을 확인한 후 자결하였다. 이외에도 11명의 장교가 자살하거나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반란군 대부분은 해산되었거나 무장 해제 상태에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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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오전 11시를 기점으로, 수도 내 모든 주요 군사시설은 북산-루이나 연합군의 통제 하에 들어갔으며, 도심 전역의 교전은 실질적으로 종료되었다. 루이나 M113 장갑차는 이후 군청사, 방송국, 국왕 경비대 구역에 배치되어 안정화 작전을 지원하였고, 일부는 국왕 경호 경로 확보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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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오후 14시, 북산 국왕은 헌정 질서 회복을 공식 선언하며, 시민과 군의 희생을 애도하고 질서 재건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하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루이나 대사관과 고문단은 해당 쿠데타 시도의 봉쇄를 북산의 자주적 결단과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이룬 성과로 평가하였으며, 향후 군의 구조 개편과 정치 안정화 지원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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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92=== 군사재판 ===
177193
178194== 반란 실패의 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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